20살 성인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건,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클럽에 가서 빵댕이를 흔드는 일도 아니었다. 난 엘파바 트룹이 되고 싶었다.
뮤지컬 위키드에 빠져 있었던 19살의 나는, 교실에 앉아있는 내내 엘파바 생각을 하는 고3이었다.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초록색 피부의 마녀. 친구를 위해서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불의에 나설 수 있는 마녀. 동생을 챙기고, 아버지를 보살피는 기구한 운명이지만 언젠가 마법사를 만나면 자신의 꿈을 이해받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진 마녀. 무대 위에서 엘파바를 연기하는 배우를 보고 있으면 나는 정말 그 애가 살아있는 것 처럼 느껴져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재능이라면 바로 그건 과몰입이 아닐까. 12살 시절 선덕여왕을 보며 실시간으로 신라시대에 살았던 전적이 있던 난, 이번에도 역시 오즈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야자 시간에 몰래 이어폰을 끼고 엘파바의 모든 대사와 넘버를 외우기 시작했다. 수학 시간에는 창문 너머를 보며 그 애의 마음을 상상했고, 기숙사 복도에서는 그 애가 되어서 노래를 불렀다. 나는 겨우 키 158의 단신이면서 168~170 거구의 엘파바가 되는 꿈을 꿨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지. 지금이야 비록 어른들이 시키는 대데로 가만히 앉아있으라는 말을 듣지만, 내가 어른이 되면 그런 것 쯤은 거뜬히 무시하고 원하는 길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을 거야. 서사의 옷을 입으면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었으니까. 무대는 언제나 엘파바가 가는 길이 열려있었고, 그 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고통도 눈 딱 감고 이겨냈다. 그러니 나도 엘파바가 소리치는 것 처럼 멋지게, 뒤를 걸어오는 친구들한테 이야기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누군가 얘기했어 한 번쯤 날개를 펴라고!”